번역의 시선, 모두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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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저 / 20231117일 발행 / / 에세이

#번역적사고 #인생의재창조 #복음적해석 #언어와삶 #해석의확장

 

 

저자 소개

저자 황석희는 2005년부터 일상이 온통 번역인 20년 차 번역가다. 흰수염번역단 단장을 맡고 있으며 영화를 주로 번역한다. 대표작으로는 마블 <스파이더맨>과 <데드풀> 시리즈, <보헤미안 랩소디>, <아바타: 물의 길> 등이 있다. 원칙과 타인의 시선보다는 언어의 모든 요소를 고려한 감각적인 번역으로 유명하다. 영화 대사도, 타인의 말도 더 잘 번역하고 깊이 이해하는 번역가가 되길 꿈꾼다.

▶관련 영상:  https://youtu.be/PPcW4A7z2tM?si=rz7dbQkVmQE1y6ey&t=81

 

본문 내용

번역의 의미 확장

영화 번역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다. 프리랜서 영화 번역가로 십 년 넘게 활동 중인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거침없이 풀어내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번역가적 사고를 보여준다. 각 에

피소드마다 번역가로서 겪는 특수한 경험과 번역을 사유하는 방식, 번역에 대한 통찰 등이 조화를 이룬다. 번역적 사고로 글로나, 사유로나 사역자 또는 성도에게 귀감이 된다. 까닭에, 번역은 단순 번역가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된다. 텍스트를 넘어 인생을 번역하는 번역가, 황석희의 세계가 그득 담긴 책이다.

 

자막 없이 보는 일상 번역.’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같은 말씨를 쓰는 것 같지만 모두 각각 다른 언어다. 잘 다루면 ‘대단한 풍미’를 내지만, 잘못 다루면 ‘매우 해롭다’. 인간의 모양만큼 다채롭고도 복잡한 것은 없기에, 그 전유물인 언어 또한 그렇다.

 

 

인사이트 인용구

언어는 여러 요소를 지닌다. 여러 갈래의 비언어적 요소, 모호하기 그지없는 뉘앙스, 직접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한데 모여 세상을 이루고 또 다른 여러 언어와 충돌한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마주하는 게 일상인 오늘,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세상을 감각하는 데 번역가적 사고는 굉장하리만치 근사한 사유 방법이다. 표면적 언어에서 벗어나 그 진의를 살피고,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시 드러낼지는 오롯이 청자의 몫이다. 이에 대한 판단에 따라 우리 삶은 입체적일 수도, 표면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번역의 정의는 외국어 해석에서 ‘삶의 해석’으로 확장된다. 단순한 의미 해석이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문화권의 말, 그에 대한 적절한 해석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시대·문화 특성, 말의 온도, 뉘앙스, 현장 분위기, 억양과 표정, 작은 제스처까지.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다듬다 보면 독해·해석에서 나아가, 새로운 ‘재창조’로 접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원어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더라도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번역을 맡았던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2021)에 이런 장면이 있다. 소행성이 곧 지구에 떨어진다는 걸 방송에 내보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 위기를 제일 처음 알린 린디 교수(디카프리오가 맡았다)는 낙담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자가 기운 내라며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와 스페인의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검토 중이에요. 그리고, 한국에서도 관심을 보이더군요.”

(There are scientists in Mexico and Spain who are currently going through the data, and, uh, South Korea has expressed concern.)

 

린디 교수는 흥분해서 펄쩍 뛰며 이렇게 말한다.

 

, 잘됐네! 한국까지.”

(Oh, that’s great! South Korea.)

 

본문 174-175쪽 중

 

위에서 사용된 “great”는 어떤 의미일까. 텍스트만 본 어느 애국자는 대한민국이 관심을 보이니 아주 잘됐다고 좋아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표면적으로는 그래 보이기도 한다. “한국까지 관심을 보인다니 잘됐다! 희망이 있어!” 정도로 번역했으려나. 그러나 영화 장면을 보면 생각이 다를 것이다. 억양과 뉘앙스,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린디 교수의 ‘great’는 훌륭하다는 의미보단 “아, 거참 잘됐네. 미국은 관심도 없고 와중에 한국이라니. 도움이나 되겠어?”와 같은 비아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관심을 가지는 국가가 최고 기술력을 가진 패권국 미국이 아닌 멕시코, 스페인, 거기다 한국이라니. 어쩐지 못 미더운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1차원적이지 않다.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수십, 수백으로 갈라진다. 이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면,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말을 잘못 번역하면 그 언어는 상호배타적이 된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단어를 알고 있다. “헐.”

 

번역가는 이와 같은 입체적인 언어를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언어가 이루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넓고 깊을 수밖에 없다. 텍스트 단면뿐 아니라 상황과 분위기, 화자의 제스처와 표정, 말투, 억양까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번역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사용한 언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삶의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표면적 모습에서 벗어나 그간 걸어온 ‘역사’, 언행이 기인하는 ‘가치관’, 선택의 기준이 되는 ‘세계관’, 그 모든 사유와 이야기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허다한 허물도 덮어주는 사랑이다.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아시는 창조주의 사랑과 같다. 이런 관점이라면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려는 뜨거운 의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키워드

#삶의 번역

‘번역가’는 자신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점에서 사역자와 비슷하다. 여러 사람의 언어를 들어야 하고, 그 진의를 알아야 하며, 이를 상호 수용적 언어로 재차 드러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까지 그렇다. 다만 우리는 각자 다른 언어와 세상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번역은 오로지 번역가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번역가적 사고는 그래서, 나나 당신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이 책은 은근슬쩍 계속 외쳐댄다.

 

이와 같은 일상의 번역, 삶의 번역은 번역가-사역자만의 사유에서 나아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 특히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해야 할 성도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일 것이다.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때문에 서로 가진 사연도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무감각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의 파도를 일으킨다.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특정한 기쁨은 어느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는 아픔일 수 있다. 그렇기에, 번역이 필요하다. 타인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모든 언어와 비언어적 요소를 사랑하며, 그들이 품은 이야기에 깊이 잠길 수 있는 그런 번역.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번역처럼.

 

#재창조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번역하신다. 그들의 말을 사랑하신다. 그 언어로써 그들이 걸어온 길을 이해하며 그 인생과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다. 그들 각자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다. 의사가 환자 상태를 알고 알맞은 진단과 처방을 하듯,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번역하여 그에 맞게 이해시키고, 믿게 하시고, 알게 하신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이토록 핏(fit)한 구원의 길이 또 어디 있는가. 각자 걷는 발걸음, 각자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다르지만, 그 끝에 복음이 피어날 수 있는 이유다.

 

때문에 번역은 재창조가 된다. 언어가 갖는 수가지 요소,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체하여 그에 꼭 맞는 의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각 인생이 갖는 온갖 이야기를 이해하고 온전케 할 진리, 복음에 의한다.

 

복음을 덧입은 인생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이전에 죄악된 표면적 모습은 더 이상 우리를 정의하지 못하며, 우리는 기존 질서에 더는 순응하지 않는다. 원어가 아닌, 번역어로써 재창조된, 아예 새로운 생명이 되는 것이다. 번역된 언어가 시청자·독자에게 다가가듯, 번역되어 새롭게 재창조된 인생은 세상 속 영혼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낸다. 번역어에 번역가의 색채와 기조가 담기듯, 그리스도로 번역된 인생에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색채가 묻어난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번역가적 삶, 즉 지극히 사랑하는 인생으로 나아간다.

 

 

결론점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부여된 의미, 삶의 가치, 복음이라는 진리가 우리 인생에 새롭게 달릴 자막이다. 오역이 절대 없는 그리스도의 번역은 끝없이 드러나는 완전한 사랑이다. 그토록 지극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번역, 그 중심에 당신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의 사랑은 우리가 오늘 받은 번역이자 매일 행할 번역이다.

 

내가 번역했다는 것 따윈 몰라줘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인생 영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화를 내가 번역할 수 있었다는 감사와 뿌듯함이면 충분하다. 영화 한 그릇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참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본문 113쪽 중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외려 조롱과 핍박이 돌아왔지만, 예수님은 인류의 기쁨을 위해, 그들이 참 평안과 생명수를 누리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각 사람의 언어와 이야기(삶)를 번역하시는 그분의 모습은 분명히 사역자, 나아가 모든 성도가 닮고 따라가야 할 부분이다.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회고하는 어느 번역가를 넘어, 벅찬 감동 아래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에 한 점 후회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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